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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BO] 조부사장의 바이오텍 탈출기 - Chapter 4

Leadership

by NVNB 2024. 2. 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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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 성장하는 조직만이 성장통을 겪는다

 

채용에 있어서는 다소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우리 회사도 회사가 성장함에 따라 필요한 사람을 하나씩 늘리다 보니 미국 팀을 포함해 어느덧 50명에 육박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채용을 그냥 필요에 따라 사람을 뽑아 월급을 주면 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실제 조직이 성장하는 방식은 그와는 조금 다르다. 조직은 구성원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선형적(linear)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계단식(tiered)으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소수정예를 좋아한다. 업무를 위해 기능적으로 필요한 소수의 전문가들이 모여 각자 대등한 입장에서 토론하면서 일하는 방식을 가장 선호하는데, 이유는 그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팀에서는 운영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다. 각자 본인의 맡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묻고 답하며 서로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일은 자연스럽게 최적화된 답을 찾아간다. 구성원들은 성숙하고 스스로 동기부여 되어 있으며, 본인의 맡은 분야에 최고의 전문성을 유지하기 위해 알아서 노력한다. 이런 조직에서는 한 명의 실패가 프로젝트 전체의 실패라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구성원 모두가 잘 알기 때문이다. 

 

미션 임파서블 팀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하지만 이런 소수정예 조직은 적어도 지금의 한국 바이오 벤처 환경에서는 구현이 불가능하다. 아직 업계가 성장기를 지나는 터라 각 분야에 글로벌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도 드물거니와, 제한적인 펀딩 환경을 고려할 때 이들을 초기부터 하나의 팀으로 모으는 것은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벤처에서는 한 두명의 창업 초기 멤버가 본인의 전문 분야와 무관하게 거의 모든 분야를 몸으로 때우다가, 자금이 생기면 가장 시급한 분야를 중심으로 인력을 늘려 나가는 방식을 사용한다.

 

안타깝게도, 이 때 대부분의 창업자들은 공통적으로 하나의 실수를 저지른다. 이는 바로 회사에 필요하지만 본인이 직접 할 수 없는 분야를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채용한다는 것. 언뜻 보기에 이 방식은 매우 효율적인 것처럼 보인다. 기존 분야는 내가 잘 할 수 있으니, 자금도 들어왔겠다 회사의 추가적인 성장을 위해 내가 못하는 분야의 전문가를 채용해 1+1=3을 만들자는 생각이다.

 

문제는 아무리 초기에 합류한 사람이라도 직원은 직원이며, 창업자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이 말은 해당 직원은 언제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회사를 떠날 수 있다는 뜻이며, 창업자가 하지 못하는 일을 새로운 직원을 채용해 맡겼다면 해당 직원이 떠나는 경우 그 일은 맡을 사람이 없게 된다. 창업자는 부랴부랴 후임을 찾아보지만 쉽게 찾아질 리 없다. 그렇게 회사는 종종 돈과 시간을 낭비하고 귀중한 성장의 기회를 날려버린다.

 

보다 적절한 방식은 다음과 같다. 회사에는 필요하지만 본인이 잘 모르는 분야를 창업자가 열심히 몸으로 때워 먼저 배우고, 어느 정도 실무를 파악한 다음 새로운 직원을 뽑아 해당 업무를 맡기는 것이다. 이는 중복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위에 설명한 대로 초기 직원이 이탈하는 경우 다시 창업자가 몸으로 업무를 때울 수 있어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직원을 채용함으로써 창업자 스스로가 다시 본인의 전문 분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과정을 무한 반복하다 보면 창업자는 회사의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준전문가적 이해도를 가진 사람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창업자의 두 번째 실수는 대개 이 즈음에 발생한다.

영수증 붙이기는 창업자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이다.

 

이 단계가 되면 창업자는 종종 스스로를 전지전능한 사람이라고 착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본인이 몸으로 때워 얻은 경험으로 회사를 성공적으로 잘 끌고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착각은 회사에 큰 재앙을 불러오는데, 바로 전문가들을 무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본인이 경험적으로 알게 된 것들을 전부라고 믿으며, 각 분야별 전문가들을 채용하기 꺼려하거나 전문가의 의견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회사는 창업자의 비전문가적 견해를 바탕으로 대부분의 의사결정을 내리게 되고, 이는 시간이 지나 결국 시장 경쟁력 부족이라는 결과를 낳게 되어 또 한 번 귀중한 성장의 기회를 잃게 된다.

 

물론 창업자들에게도 나름의 변은 있다. 이는 바로 전문가들이 시야가 좁고 회사 전반에 걸친 판단을 하지 못한다는 것. 따라서 전문가들의 의견은 종종 부분적으로 맞지만 전체적으로는 틀린 경우가 있다. 하지만 넓이와 깊이를 같이 가져가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사람의 욕심일 터, 전문가는 넓이 대신 깊이를 선택한 사람이므로 이들의 시야가 좁은 것은 매우 당연하다. 그리고 그들의 부족한 시야를 메우기 위해 창업자가 그렇게 오랜 시간 몸으로 때워 경험을 쌓는 것이다. 결국 창업자의 넓이와 전문가의 깊이는 회사의 성장을 위해 상보적인 관계이지,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대체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이여, 오해는 하지 말자. 회사의 모든 최상위 의사결정은 창업자가 해야 한다. 본인의 의견이 의사결정의 결과와 다르다고 해서 본인의 전문가적 의견이 무시당한 것은 아니다. (이건 결국 균형의 문제일 테니, 다음에 언젠가 다루도록 하겠다.)

 

균형은 살면서 마주치는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준다.

 

여기까지 오면 바램 같아서야 회사가 무럭무럭 성장하면 좋겠지만, 이 즈음에서 대개 세 번째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바로 주요 보직에 자리를 잡은 전문가들이 힘을 얻게 되면서 회사의 방식보다 본인의 방식을 더 앞세우기 시작한다는 것. 이 시점이 회사에서는 바로 시스템이 필요한 시점이고, 노벨티노빌리티는 현재 여기에 와 있다.

 

많은 경우 전문가는 경영과 리더십을 훈련받은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경력이 쌓이면 자연스레 관리자의 직책을 갖게 되는 한국의 업무 환경에서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관리자의 역할을 맡는다. 많은 벤처회사에서는 처음 보직을 맡는 관리자가 많지만, 이들에게 경영과 리더십을 교육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 초짜 전문가 관리자들은 팀을 이끌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는데, 그 중 가장 자주 발생하는 문제가 본인의 선호대로 팀을 운영하는 것이다.  

 

사실 사람들을 데리고 일을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떤 한 사람이 100만큼의 업무를 할 수 있다고 할 때, 둘이서 일을 하면 200만큼 하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160정도 할 수 있다. 이는 커뮤니케이션 코스트(내용 공유, 방식 합의, 결과 확인 등)를 고려하면 실제로는 인당 생산성이 20%정도 하락하기 때문이다. 같은 논리를 적용해 업무량을 계산하면 세 명일 때는 192, 네 명일 때는 205, 다섯 명일 때는 205, 여섯 명일 때는 197이 된다. 그리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듯이 이후 사람이 늘어날수록 팀의 성과는 오히려 줄어든다.     

 

따라서 회사에서는 초기 팀을 구성할 때 두 가지를 신경 써야 한다. 첫째, 팀의 규모를 최대 4명 이하로 유지할 것. 둘째, 팀원이 늘어남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인당 생산성 감소를 최소화할 것. 참고로 위 계산에서 인당 생산성의 하락 폭을 20%에서 10%로 낮출 수 있다면 4인 기준 팀의 생산성은 205에서 292로 약 42% 늘어난다. 반대로 인당 생산성이 30%씩 하락한다면 3명만 되어도 팀의 생산성은 더 이상 늘지 않는다.

 

회사의 시스템은 이 때 그 필요성이 커진다. 다른 말로는 표준화라고 불리는 이 작업은, 앞에 설명한 팀의 생산성 하락 이슈가 회사 전반에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 전문가 관리자들이 본인의 선호대로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조직 간 커뮤니케이션 코스트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앞서 개인과 개인 사이에 발생했던 이슈가 부서와 부서 사이에 발생하게 되면, 회사 전체의 생산성이 급격히 하락하게 된다. 시스템은 이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도입되며, 큰 틀에서 임직원들의 업무처리와 행동 방식을 적절히 제한하는 울타리 역할을 한다.   

 

사실 시스템은 ERP나 LIMS같은 IT 솔루션만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다. 벤처회사에서 진정한 의미의 시스템이란 조직문화를 뜻한다. 문제는 새로운 사람이 끊임없이 유입되는 성장하는 벤처회사에서는 조직문화가 올바로 이해되고 자리잡을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는 것. 조직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요하지만, 그 성과는 쉽게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많은 회사에서 조직문화는 그냥 팀빌딩 워크샵용 소재 혹은 듣기 좋은 액자속의 문구로만 남게 된다.  

 

나는 우리가 추구하는 조직문화가 홈페이지상의 문구로만 남는 것이 싫었다. 지난 수년간 나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열심히 그 내용을 설명해 왔지만, 결국 직원들에게는 일년에 두어 번 듣는 내 이야기보다 매일 마주치는 팀장의 지시가 더 와닿기 마련이다.

 

우리가 연초에 새로 만든 “노벨티노빌리티 조직문화 실천을 위한 10가지 행동 지침”은 이런 고민 끝에 탄생했다. 회사 구성원을 위해 만든 내용이므로 블로그에 그 내용을 싣지는 않겠지만, 매 단어 하나하나 깊이 고민해 선택했고 임직원들의 매 회사생활 판단의 순간에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는 마음을 눌러 담았다. 어느 문장 하나 허투루 쓴 것이 없으며, 나 또한 쓰여진 그대로 행동하기 위해 내용을 곱씹으며 작성했다. 부디 매일 지나다니며 행동 지침을 보는 모든 임직원들에게 나와 같은 마음이 일어나기를 바래 본다.

 

성장통은 성장하는 사람과 조직만이 겪는다. 성장통은 아프고 괴롭지만 우리가 잘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조직은 성장함에 따라 다른 종류의 성장통을 마주하게 된다. 이 글에서는 분량상 세 번째 문제 까지만 다뤘지만, 사실 이 단계를 지나고 난 뒤에도 우리의 성장을 방해하는 문제들은 매우 다양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는 철학자 니체의 말을 떠올리며,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새로운 성장통을 은근한 마음으로 기대해본다.  

 

그렇지만 성장을 위해 일부터 고통을 찾는 것은 좀 변태스럽다.

 


글 CFBO 조성진

편집 권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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