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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BO] 조부사장의 바이오텍 탈출기 - Chapter 2

Leadership

by NVNB 2023. 8. 2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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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우리는 그것을 기업가정신이라 부른다.

 

들어가기에 앞서, 이 이야기는 누군가를 추켜 세우거나 비난하려는 의도로 쓴 글이 아니다. 나 또한 이번 일을 겪으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고, 앞으로 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 있는 우리들 중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간 있었던 일을 담담하게 기록한 글이다. 어디까지나 나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적었으므로, 이 이야기는 객관적일 수 없음을 미리 밝힌다.

 

2023년 8월 14일 월요일 미국동부시간 오후 4시 50분. NN2101의 FDA IND가 통과되었다. 남들 다 하는 IND 하나 통과한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물을 수 있지만, 이번 IND에는 조금 특별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본 IND는 2022년 10월에 통과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같은 해 5월에 진행한 pre-IND 미팅에서 한 가지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는데, FDA에서 SVP(sub-visible particles)의 측정 기준을 USP <787>에서 USP <789>로 변경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SVP는 단백질 의약품에서 측정해야 하는 주요 QC 지표의 하나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이물질이 있는 경우 환자의 안전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취지이다. <787>과 <789>는 모두 주사제 단백질의 SVP 시험법에 대한 가이드라인인데, 그 중 <789>는 안구용 물질(ophthalmic solutions)에 특화된 SVP 기준으로 <787>에 비해 수용 한계치를 약 500배 가량 낮춘 것이다.

 

문제는 NN2101의 SVP 값이 release test에서 <789>를 기준으로 out-of-spec(OOS)이 나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789>는 USP <771> “Ophthalmic Products Quality Tests”에 근거해 시행 여부를 결정하는데, <771>은 우리가 pre-IND 미팅을 진행한 2022년 5월에는 아직 공식 시행 전이었다. (시간이 흐른 뒤 확인할 수 있었던 내용이지만, <771>은 같은 해 12월 1일자로 공식 시행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당시 현행 규정이던 <787>에 근거해 SVP 데이터를 준비했는데, FDA에서는 조만간 <789>를 공식 시행할 예정이므로 우리에게 미리 <789>를 적용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우리가 가진 SVP 데이터는 <787> 기준으로는 spec-in, <789> 기준으로는 out-of-spec이었다.

 

억울했다. 하지만 실망할 여유는 없었다.

 

문제의 해결은 문제를 바로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법. <789>가 공식 시행 전이라는 점을 들어 FDA의 지시사항을 무효화할 수 있는지 알아봤다. 원론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나 FDA의 심기를 거슬려 얻을 것이 없었다. Regulatory 컨설턴트, 임상 CRO, 국내외 업계 전문가, 과학자문위원단(SAB)를 통해 <789>를 경험해 본 사람을 찾아봤다. 아직 공식 시행된 규정이 아닌 관계로 아무도 없었다. 승인 단계에 근접한 바이오시밀러 개발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강화된 <789> 기준 자체보다는 불안정한 기시법이 문제라 했다. SVP 값을 측정할 때마다 결과가 달라지는데, FDA에 문의하면 회사에서 대안을 가져오라고 한다 했다. 발견된 SVP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봤다. 어디서는 protein이라 했고 다른 어디서는 non-protein이라 했다. 내부 실무 책임자의 의견을 모아봤다. What’s failed is a failure. GMP 배치를 다시 생산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최소 1년 이상의 시간과 25억가량이 필요한 비싼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다시 생산한다고 해서 SVP 이슈가 해소될 거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도 많은 노이즈가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2개월 안정성 데이터가 도착했다.

 

Spec-in 이었다. 잠깐, 지금 뭐라 했나요? 2개월뿐만 아니라 0.5개월과 1개월 데이터도 모두 spec-in 이었다. 그럼 release test 결과는 뭔가요? Investigation을 해봐야 알 수 있다는 답변이 왔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일단 가보자.

 

예상한 대로 CMO나 CRO에서는 본인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결과를 내놓았다. 당시 생각할 수 있었던 몇 가지 root cause가 있었다. 그 중 가장 유력한 것은 주사기에 포함된 윤활유가 SVP의 주 원인이라는 것. 우리 NN2101은 안구 내 주사(IVT)로 전달되는 약물이어서 DP fill volume이 극도로 작았다. 하지만 SVP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시료의 최소량이 25ml은 되어야 했고, 이를 맞추기 위해 여러 개의 vial을 pooling한 다음 희석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 과정에서 주사기로 약물과 희석액을 뽑거나 넣는 작업을 반복적으로 시행해야 하므로 주사기에 있는 윤활유가 유입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이런 과정은 임상 시험시에는 불필요한 작업이므로 우리에게 발생한 SVP 이슈는 QC 상황에서만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다. (보다 정확하게는, 임상에서 pooling은 필요하지 않고 희석은 phase 1a에서만 진행한다.) 내부 실무팀에서 자체적으로 실험한 결과도 같은 가능성을 제시했다.

 

모든 SVP 테스트는 동일한 CRO에서 동일한 프로토콜을 기반으로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elease test는 OOS인 것이 0.5, 1, 2개월에서 모두 spec-in이라면 문제는 우리 물질이 아니라 release test 당시에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더욱이 release test 이후 담당 시험자가 변경되었다는 정보는 이 가설에 더 힘을 실어 주었다. 아쉬운 것은 당시 샘플이 남은 것이 있다면 재실험을 하면 명확했겠지만, 한 번의 SVP 측정을 위해 pooling과 희석을 거쳐야 하는 만큼 재실험을 위해 남은 시료는 없었다.

 

탈출구가 빼꼼하게 보였다.

 

전략을 세웠다. FDA 조차도 답을 모른다면 다른 누가 주는 의견도 믿고 따를 수 없었기에, 일단 정면으로 부딪혀 보자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2X2 매트릭스를 쓸 때다. 가로 축에는 현재 배치로 IND를 가는 경우와 새로운 배치를 생산하는 경우를 적었다. 세로 축에는 <789>와 관련된 이슈는 아직 미국에만 존재하는 점을 근거로 미국에서 임상을 시작하는 경우와 미국 외의 나라에서 임상을 시작하는 경우를 적었다. 총 네 가지 옵션 중 feasibility를 고려해 하나를 탈락시켰고, 아래와 같은 세 가지 시나리오를 마련했다.

NN2101 IND 전략 매트릭스

1.     Release test에서 발생한 SVP 이슈가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고 현재 배치로 미국에서 IND를 간다.

2.     1안이 실패하는 경우, 새로 생산한 배치로 미국에서 IND를 간다. 재생산을 한다고 SVP 이슈가 해소될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가능성에 베팅해 볼 기회는 있었다. 

3.     만약 새로 생산한 배치에서도 SVP 이슈가 발생하는 경우, <789>가 아닌 <787>에 부합한 SVP 데이터로도 문제가 없는 미국 외 국가를 선택해 IND를 간다. 여러 국가를 비교한 끝에 한국을 골랐다.

 

운영. 영어로 operations라고 하면 왠지 조금 더 친숙한 이 단어는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지만, 기업 운영을 이야기할 때 그 핵심은 어떤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앞으로 나갈 수 있는 “robust plan”을 준비하는 데 있다. (Robust라는 단어는 우리말로 일대일 번역이 잘 안 되는데, 사전적으로는 튼튼한, 탄탄한 등의 의미를 갖지만 경영적 관점에서는 “어떠한 변수가 발생하더라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의 의미를 지닌다.) 위의 세 가지 시나리오라면 최악의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일단 임상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진행하면 될 것 같았다.

 

“3개월 안정성 데이터가 없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요? Release test에서 OOS가 나왔을 때 본 배치를 못 쓸 것 같아서 안정성 테스트를 취소했습니다. Hold가 아니라 취소를 했다구요? 그렇습니다. 2개월 데이터를 보고 다시 시험을 재개 시켰는데, 3개월은 이미 시간이 지나버려서 데이터가 없습니다. 다음 데이터는 6개월입니다. (......) 그럼 6개월 데이터라도 나오면 그걸로 갑시다. SVP 이슈가 없다는 전제 하에요.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문제에 난이도가 하나 올랐다. 하지만 6개월 데이터만 문제없다면 여전히 해 볼만 하다고 느꼈다.

 

“6개월 데이터가 와야 하는 날이 한참 지났는데 데이터가 오지 않습니다.”

 

6개월 데이터는 시나리오 1을 위한 핵심 가정이다. 6개월 데이터가 없거나 6개월 데이터에 문제가 있는 경우 시나리오 1은 실행을 위한 필요조건을 상실한다. 우리 내부에서는 시나리오 1 불가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Fail is fail인데, 거봐 내가 뭐랬어. 아, 내가 참 싫어하는 말이다.  

 

문제는 CRO인 E사가 일을 정말 거지같이 하는 것. 다소 강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나는 막상 같이 일을 해보면 의외로 그리 사납지 않고 남 탓을 거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CRO의 담당 PM이 정말 일을 못해도 너무 못했다. 우리 쪽에서는 어떤 대응을 했느냐고 물었다. 40일간 10통의 이메일을 보냈지만 한 통의 답변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비록 원인은 CRO에서 제공했지만, 대답이 없는 상대에게 10통의 이메일을 보내는 게 올바른 문제해결 방법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실무 책임자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동의할 수 없었다.

 

담당 PM의 보스에게 연락을 취했다. 미국 애들과 일을 할 때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 직속 보스에게 연락하는 것이 최선이다. 담당자가 무능한 경우 담당자를 붙들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봐야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얘들이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것은 해고이고, 그 인사 결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직속 보스를 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제법 말이 통하는 VP급 담당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했다. 적극적인 도움을 약속한 그녀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로부터 2주 후 회사를 떠났다. 다른 PM 헤드에게 연락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많이 늦은 6개월 데이터가 도착했다. SVP는 spec-in 이었다.

 

먼 길을 돌아 다시 시나리오 1을 시행하기로 했다. 그 때까지 준비된 내용을 바탕으로 CTD 패키지를 작성해 나갔다. 다른 데이터는 별다른 우려가 없었기에, 믿을 만한 컨설턴트의 도움을 받아release test에서 발생한 SVP OOS의 justification에 집중했다. 제출일을 며칠 남긴 시점에 내부에서 리뷰 요청이 왔다. 잘못된 정보가 제법 눈에 띄었다. 불안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 지 몰랐다. 갈아 엎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 없었다. SVP만 문제가 되지 않으면 괜찮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4월 18일, IND를 FDA에 제출했다.

 

그로부터 3주 뒤, FDA로부터 1 차 보완 요청이 왔다. 아직 1차 요청에 대한 답변을 하기도 전에 2차 보완 요청이 도착했다. 내용을 보니 충분히 답변 가능해 보였다. 그리고 며칠 뒤, 담당 CRO의 regulatory head로부터 내부 회의를 소집하는 이메일이 왔다.

 

“FDA is very concerned with the quality of the submission. … (중략)… They are having difficulty comparing work done during development with how that relates to the clinical lots...”

 

요지는 IND 패키지의 QC가 제대로 되지 않아 정상적인 리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화가 치밀었다. 지금까지 그 많은 시간동안 우리는 뭘 했으며 담당 regulatory consultant는 뭘 한건지 알 수가 없었다. SVP 이슈를 설득하기 위해 그간 수많은 노력을 해왔는데, 그러는 사이 정작 기본을 놓친 것이다. 결국 리뷰의 핵심은 지금까지 우리가 진행해 온 다양한 개발 업무에 대해 규제기관으로 하여금 ”무엇을 했느냐(What)”가 아니라 “왜 그런 업무를 진행했으며(Why)”와 “어떻게 했는지(How)”를 이해시키는 데 있었다. SVP 이슈를 설득하는 것은 그 중 일부였을 뿐, 결국 우리가 제출한 패키지에는 전체 개발업무를 관통하는 Why와 How가 빠져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그 외에도 문서 레퍼런스 링크가 깨져 있거나 리뷰에 불필요한 내용이 너무 과도하게 들어가는 등의 기초적인 문제도 많았다.) 그렇게 어렵게 제출한 IND를 철회했다.

 

아 그냥 때려칠까 싶었다. 애당초 안 되는 일이었는데 내가 고집을 부려서 여기까지 억지로 끌고 왔나. 아직 현금 여력도 괜찮은데 그냥 새로 생산해서 깔끔한 데이터 패키지로 다시 갈까. 그랬는데 SVP 문제가 다시 발생하면 어쩌지.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새로운 날은 새로운 생각을 하기에 적합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생각을 정리했다. 바뀐 것은 없었다. 세 가지 시나리오는 여전히 유효했고, 이번 IND 철회는 시나리오의 가정과 무관했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우리가 만든 SVP 설득 논리에 대한 FDA의 답변을 듣지 못했다.

 

실무팀을 새로 꾸렸다. 패키지를 거의 새로 썼다. 새로 지정된 regulatory consultant는 어떻게 이런 퀄리티로 IND를 제출했느냐고 물었다. 모욕적이었지만 그냥 웃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7월 14일, 우리는 그렇게 새로운 IND 패키지를 제출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30일이 지난 8월 14일, FDA로부터 그렇게 기다리던 “you may proceed” 이메일을 받았다. 아무런 질문도, 보완 요청도 없었다. IND를 준비하는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언급했던 risk와 concern에 대해 정작 FDA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첫 번째 IND를 통과했다. 

 

축구에서는 우연히 올린 크로스가 지나가던 사람의 엉덩이를 맞고 들어가든, 메시로 빙의해 10명을 제치고 오버헤드 시저스 킥을 넣든, 한 골은 그냥 한 골이다. 우린 그냥 한 골을 넣었을 뿐이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 한 골의 의미가 남다르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그 마음만 있다면 우리는 뭐든 이룰 수 있다.

 

중꺾마


글  CFBO  조성진

편집  권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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