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dership

[CFBO] 조부사장의 바이오텍 탈출기 - Chapter 8

NVNB 2025. 10. 14. 09:26

 

Chapter 8. 결국 답은 사람이다

 

난 원래 좀처럼 꿈을 꾸지 않는다. 아무리 일이 바빠도 하루 8시간은 자야 하는 체질이고, 그 8시간도 꽤나 깊은 잠을 자야 한다. 어쩌다가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거나 중간에 깨는 일이 생기면 그 날은 괜찮지만 그 여파가 며칠동안 남아 피곤함을 느낀다. 가장 최근에 꿈을 꾼 기억은 족히 10년은 넘은 것 같다. 그리고 그 조차도 정확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희미했다. 그만큼 좋은 잠은 내게 중요하다.  

 

그러던 내가30여년 만에 처음으로 악몽을 꿨다. 꿈에서 깨어 처음 나를 돌아본 느낌은 “당황스러움” 이었다. 악몽이라면 기분이 나쁘거나 무섭거나 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나는 당황스러웠다. 30여년 만에 악몽을 꾼 것이나 아침에 일어나니 그 꿈의 내용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았다는 것도 나를 당황스럽게 하기에 충분했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기억에 남아 있는 꿈의 내용이었다.

 

기묘한 이야기에나 나올법한 내 꿈의 내용은 이랬다. 이름이 “신랑”이라는 한 사람이 등장한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리는 얼굴을 한 그는 “신시랑”이라는 이름과 “시신랑”이라는 이름 중 어느 이름이 더 좋으냐고 내게 물었다. 영문을 몰라 갸우뚱한 나에게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자기는 원래 남자로 태어났는데 최근 여성의 인육을 먹고 중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변화를 반영하는 이름을 짓고 싶은데 위의 두 이름 중 어떤 이름이 더 좋게 들리느냐는 질문을 내게 하고 있었다.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당혹감을 느낀 것도 잠시, 꿈이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졌다. Chat GPT에게 물어봤더니 아래와 같은 해석을 들려줬다.

꿈에서 인육을 먹는다는 건 매우 강한 욕망을 나타냅니다. 꿈에서 욕망을 나타내는 요소는 다양하지만 인육은 금기를 상징하며, 금기시 되는 행동을 해서라도 뭔가를 얻고 싶은 마음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그 인육을 먹은 사람이 본인이 아니라 누군가가 인육을 먹고 변화한 모습을 지켜보는 입장이라면, 그건 본인은 선을 넘지 않았으나 주변에서 선을 넘어서라도 잘 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부러움을 느끼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요즘 무엇에 대해 그렇게 강한 욕망과 부러움을 느꼈을까. 따지고 보면 원하는 것이나 주변에 부러워할 것들이야 널려 있지만, 일부러라도 남과의 비교를 잘 하지 않는 내가 꿈에서도 생각할 만큼 원하는 것이 뭐가 있을까. 그러다가 한 가지가 생각 났다. 아, 좋은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에 대한 욕심이 있구나.

 

10년이 넘는 벤처 생활을 겪으며 두 번의 구조조정을 경험했다. 첫 경험은 10년쯤 지난 일인데도 아직도 거의 모든 디테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이렇다. 당시 회사에는 남은 돈이 많지 않았고, 모 회사로부터 140억 원의 투자약정을 받았으나 방만한 조직을 효율화 하는 것이 투자의 전제조건이었다. 나는 상무 직급으로 회사의 구조조정을 맡았다. 회사에는 여러 명의 부사장이 있었고, 그 중에는 국내 대기업에서 이직해 온 사람이 있었다. 그는 회사에 합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본인의 오른팔을 영입해 상무로 앉혔고, 본인 휘하 조직의 양적 규모를 키워 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성향을 지녔다. 당연하게도, 구조조정 과정에서 가장 큰 마찰을 일으킨 건 그 사람과 그 사람이 데려온 조직원들이었다.

 

그와 그의 조직은 참 다양하게도 나를 괴롭혔다. 어느 것 하나 쉽게 동의해주지 않았고, 그렇지 않아도 돈이 부족한 회사에 다양한 보상을 요구했다. 남는 직원들의 월급도 제대로 주기 힘든 상황에서 퇴사하는 임원이 뭔가를 조금이라도 더 얻어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모습은 참 못나 보였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이해할 수 없었던 행동은 그와 그의 오른팔이 사직서를 다음 달 1일에 제출한 것이었다. 나였다면 당연히 말일을 기준으로 퇴사하는 것이 모양상 깔끔하다고 생각했을 테다. 그러나 그 진짜 이유를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다. 회사의 임원 인사규정에 “임원은 하루만 근무해도 한 달 월급을 지급받는다”는 조항이 있었던 것. 물론 이 건 외에도 사람의 바닥을 볼 수 있는 경험이 많았지만, 그 때의 충격은 10년도 더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런 생각들을 하기 시작한 것이 아마 그때부터 였던 걸로 기억한다.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나는 누구와 함께 일하고 싶은가. 나중에 내 회사를 만든다면 나는 어떤 사람들로 구성원을 채워야 할까… 

 

한동안 잊고 지냈던 생각들이 최근 두 번째 구조조정을 하고 난 뒤 다시 떠올랐다. 국내에는 전문적인 경험을 보유한 인력의 풀이 제한적이라는 이유, 벤처회사에 이정도면 괜찮다는 이유, 아직은 우리 회사가 성장하는 중이라 구직자들에게 상대적인 매력도가 부족할 수 있다는 이유 등 지난 8년간 다양한 이유로 적당히 타협했던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건 그간 우리 회사를 거쳐간 사람들이 능력적으로 부족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보다는 나의 부족함이 가져올 수 있는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해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로 조직을 채웠어야 하는 목표를 잠시 잊고 지냈으며 아직 달성하지 못했다는 자아 성찰에 가깝다.

 

조직을 정리하는 것은 경영자가 겪을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 중 하나이다. 떠나는 사람들은 남는 사람들을 욕하고, 남는 사람들은 떠나간 사람들의 빈자리로 인해 아프다. 누군가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실행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모든 힘든 경험은 그 과정에서 현실을 직시한 사람들에게 성장의 기회를 제공한다. 사람들을 내보낸 경영자나, 선택되어 남게 되는 직원들이나, 다른 의미로 선택되어 조직을 떠나는 직원들이나, 심지어 그 모든 것과 무관하게 본인의 선택으로 조직을 떠나는 직원들에게도. 누군가는 그 과정에서 사람의 밑바닥을 경험하고, 누군가는 사람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지며, 누군가는 일상의 행복을 깨닫고, 누군가는 본인의 시장 경쟁력에 대해 고민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경험과 고민들은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사람을 성숙하게 만든다.

 

지금의 나는 조직의 빈 자리를 다시 좋은 사람들로 채우기 위해 노력 중이다. 내가 두 번의 경험을 통해 가장 크게 배운 것은 “결국 일은 남는 사람들이 한다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떠난 사람은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내가 찾는 좋은 사람이란 이런 사람들이다.

 

망가질 사람, 버텨낼 사람, 거슬러 올라갈 사람.. 완벽하지 않으며, 우월하지도 않고 심지어는 우왕좌왕해 보여도 끝내는 실천에 이를 사람. 적어도 어느 한 가지 이상에서 나보다 뛰어나 서로에게 배울 것이 있는 사람. 함께 이야기 하면 서로의 생각이 넓어지고 커가는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 회의 시간에 의견이 달라 얼굴을 붉히며 자신이 맞다고 우기더라도 뒤돌아 서면 소주 한 잔 마시면서 웃고 떠들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들로 채워진 조직에서 함께 일하고 싶다. 아니, 이런 사람들로 조직을 채워야겠다.  하지만 인육은 먹지 않을 것이다. 꿈에서도 그랬듯이.

 

P.S. 조직과 조직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늘 어렵다. 조직문화에 대한 리더의 이야기는 지향점이며 이는 많은 경우 실제로는 현재와 괴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늘 하는 말이지만,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은 금연을 이야기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