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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VO 2022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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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VNB 2023. 3. 16.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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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그렇게 많이 다녔지만 덴버는 처음이었다. 2년 반만의 해외 출장이라 좀 떨리기도 했다. 토요일 저녁 콜로라도 국제 공항에 내려 한 시간 조금 못되게 우버를 타고 호텔로 이동했다. 도시를 보니 수십층짜리 고층 건물이 즐비했는데 지어진 지 얼마되지 않은 듯했다. 길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주말 저녁 쌀쌀한 날씨 탓인가 싶었다.

미국 학회는 보통 일요일부터 시작한다. 퇴근 시간은 칼같이 지키는 사람들이 왜 학회만 유독 주말에 시작하는지는 늘 의문이다. 학회장에 가니 덴버의 명물이라는 파란 곰이 우릴 반겼다. 이 녀석의 작품명은 '당신이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고 있다'(I see what you mean)란다. 이런 관음증 있는 곰이라니. 어쩐지 학회 내내 뒤통수가 따갑더라.

출처: condit.com

ARVOThe Association for Research in Vision and Ophthalmology의 줄임말로, 우리 말로는 미국안과학회 정도 된다. 다른 안과 학회로는 AAO가 있는데, ARVO는 보다 초기 리서치 중심이고 AAO는 임상 중심이라고 보면 된다. 조금 익숙한 항암제와 비교하자면 ARVOAACR, AAOASCO에 각각 비교된다.

이번 ARVO에서는 몇 가지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우리가 꽤 오랫동안 연구해 밝혀낸 신규 기전을 포스터(다운로드)로 발표하는데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싶은 것이 첫째였다. 관심있는 주요 질환에서 초기 연구 트렌드를 보는 것이 둘째였고, 주요 경쟁 프로젝트들의 임상 결과 발표가 셋째였다. 결론부터 먼저 스포일 하자면, 우리가 개발 중인 anti-cKIT 항체 NN2101은 꽤나 매력적이다. 어쩌면 진짜 게임체인저가 될지도.

[NN2101][ARVO Poster] The novel function of NN2101 as an inhibitor of HIF via c-kit regulation in retinal neovascularization and neurodegeneration.pdf
1.87MB

 

안질환에서 anti-cKIT 항체를 개발하는 건 글로벌에서 우리뿐이다. 신약은 늘 어려운 것이, 남들 다 하는 걸 하면 경쟁력이 없고 아무도 안 하는 걸 하면 옳기가 힘들다. 본인의 사이언스에 기반한 자기 확신, 남들 모두와 아무도의 그 중간 어디쯤의 적절한 밸런스, 그리고 혹시 모르는 미투 약물을 따돌리는 개발 스피드. 이런 것들이 뒤섞여야 어디 가서 명함이라도 내민다. 늘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신약개발은 비즈니스로서는 최악이다.

 

황반변성이나 당뇨병성망막증으로 대표되는 망막 질환은 VEGF를 저해하는 것이 지난 2006년 로슈의 Lucentis가 출시된 이후 지금까지도 표준 치료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다양한 이유로 발생하는 안구 내 산소부족현상(hypoxia)를 해소하기 위해, 마치 나무가 물이 있는 곳을 향해 뿌리를 뻗어가듯이, 자생적으로 산소를 공급받기 위해 비정상적인 혈관을 만드는 “angiogenesis”를 저해하는 방식의 치료법이다. 이 시장은 Eylea라는 약물이 꽉 잡고 있는데, 지난 수년간 연간 10조씩 팔리면서 지금의 리제네론을 만들었다.

좌: Lucentis / 우: Eylea

망막질환의 미충족 의료 수요(unmet medical needs)가 뭐냐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좀 덜 맞아도 되는 주사제를 개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좀 더 그럴싸한 표현으로는 약물의 durability를 늘리는 것이라 한다. 하지만 이는 절반만 맞는 말이다. 전체를 보면 그림이 조금 달라진다.

 

황반변성은 크게 건성(dry)과 습성(wet)으로 나뉜다. 건성은 아직 마땅한 약이 없고 습성에서는 durability를 늘리는 것이 지상 과제이다. 습성 황반변성에서 최근 승인받았거나 후기 임상 중인 파이프라인들을 보면, KSI-301처럼 물리적으로 물질의 크기를 키워 PK를 늘리거나, RGX-314처럼 AAV 벡터 기반의 유전자 치료제이거나, Lucentis PDS처럼 리필 가능한 포트를 눈에 심는 것 등 다양한 접근이 durability를 늘리기 위해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이 시장에서 지금까지의 승자는 로슈의 Faricimab인 듯하다. 위에 언급한 다른 파이프라인들은 durability를 늘리기 위해 약효나 안전성의 일부를 희생했다. 약효를 희생한 경우 허가 자체가 불투명하고, 안전성은 얼마나 희생했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자칫 잘못하면 허가를 받고도 의사들의 선택을 받지 못해 약이 팔리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 이건 신약개발 회사에게는 정말 최악의 상황이다. 하지만 Faricimab은 약효나 안전성에서 잃는 것 없이” 45%의 환자가 16주 투여, 80%의 환자가 12주 투여 가능하다는 durability를 확보했다.

 

적어도 내 관점에서, KSI-301/RGX-314/PDSFaricimab의 가장 큰 차이는 어떻게 durability를 확보했느냐에 있다. 앞의 세 물질은 VEGF 저해제라는 틀 안에서 PK를 늘리는 전략이었고, Faricimab은 기존 VEGFAng2라는 새로운 타깃을 추가한 이중항체인데 물질의 크기는 일반 IgG 항체와 유사해 PK가 아닌 PD 관점으로 접근한 것이 가장 큰 차이이다. 습성 황반변성에서는 한동안 PK를 늘리는 전략이 인기를 끌었는데, 이는 비임상 단계에서부터 extrapolation을 통해 durability를 예측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문제는 이 경우 뭔가를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임상을 통해 밝혀졌고, 지금의 임상 중인 파이프라인들도 데이터가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는 것이다.

 

반면, 망막질환의 또 다른 축인 당뇨병성망막증으로 가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 습성 황반변성은 VEGF 저해제를 통한 치료효과가 워낙 뛰어나지만, 당뇨병성망막증은 꼭 그렇지 않다. 아무래도 같은 망막질환이지만 병이 발생하는 원인이 달라서인데, 혈관이 높은 혈당에 만성적으로 노출되면서 pericyte가 이탈하고 inflammation이 발생하며 그 결과 시신경세포가 죽는 것이 문제이다. 이 영역에서는 많은 염증성 사이토카인을 저해하는 치료제가 연구 중인데, 하도 많은 타깃들이 다 자기네가 메인이라고 주장하는 통에 진실이 뭔지 알기가 참 어렵다. 사람의 눈은 매우 복잡한 기관이고, 중요한 건 개별 타깃이 아니라 axis 전체를 조절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결론적으로 이런 점에서 우리가 개발하는 anti-cKIT 항체가 전사인자인 HIF를 조절함으로써 angiogenesisinflammation을 동시에 조절하는 것이 매력적인 접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로벌에서 유일하게 우리만 관심이 있던 타깃을 지금까지 개발하면서, 이 미운 오리새끼가 잘 자라서 백조가 되면 어떤 기분일까 잠시 상상해봤다. 나쁘지 않았다.

출처: 미국 관광청

학회를 마치고 잠깐 여유가 있어 다시 돌아본 덴버는 참 이상한 동네였다. 예술의 도시라는 타이틀이 참 무색하게도, 길에는 여전히 사람이 없었고 그렇게 큰 건물에도 드나드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 한 쪽에서는 새로운 건물을 짓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아이러니해 보였고, 길에는 없던 사람들이 왜 식당에는 그리 많은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짐 캐리 주연의 트루먼쇼의 주인공이 된 듯, 지금 보이는 저 길의 끝까지 가면 세트장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노벨티노빌리티 CFBO 조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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